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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서 금속활자·시계부품·화포 무더기 출토

물시계·천문시계 등 세종 시대 과학 유산 흔적 대규모 발굴은 처음

작성일 : 2021-06-29 16:26 작성자 : 신준호 (kmaa777@naver.com)

서울 인사동에서 나온 금속활자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9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금속활자와 천문시계 부품, 옥루 혹은 자격루의 부속품의 일부로 추정되는 동제품, 화포 등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문화재청과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수도문물연구원은 이날 탑골공원 인근 ‘공평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인 인사동 79번지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16세기 문화층(특정 시대 문화 양상을 알려주는 지층)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을 비롯해 물시계 부속품 주전(籌箭), 일성정시의, 화포인 총통(銃筒) 8점, 동종(銅鐘) 등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금속활자와 주전으로 추정되는 동제품은 도기 항아리에서 나왔으며 나머지는 주변에서 여러 조각으로 나뉜 채 발견됐다.

이번 조사에서 발굴된 한자 활자 1,000여 점과 한글 활자 600여 점의 금속활자는 조선 전기의 다양한 금속활자가 한곳에서 발견된 첫 번째 사례다. 개중에는 구텐베르크가 1440년대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와 인쇄술을 개발할 무렵이나 그보다 앞선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있었다.

이제까지 1455년 무렵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한글 활자 약 30점 외에는 임진왜란 이전 금속활자가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유물의 발굴은 특히나 뜻깊다. 

이번에 발굴된 활자는 1443년 훈민정음 창제 당시 표기가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를 비롯해 한자 활자인 1434년 갑인자(甲寅字), 1455년 을해자(乙亥字), 1465년 을유자(乙酉字)로 추정된다.

한편 이상적인 유교 정치 이룩하고 한글 창제, 과학기술 발전 등의 업적을 세운 세종 대왕 시기의 대표적인 발명품인 물시계 자격루나 천문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는 여태까지 실물은 없었다. 그나마 국보로 지정된 자격루는 중종 31년인 1536년에 만든 것으로 청동 물그릇만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인사동에서 나온 일성정시의 부품은 시계에서 바깥쪽 테두리를 구성하는 원형 고리 3점으로 판단된다. 바깥쪽부터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으로 불린다.

 

물시계 부속품인 주전으로 추정되는 동제품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주전(籌箭)의 일부로 보이는 동제품은 시간을 알리는 시보(時報) 장치를 작동시키는 부품이다. 조선시대 자동 물시계는 시간을 측정하는 부분과 시간을 알리는 부분이 구분되는데, 주전은 시간을 알리는 부분에 속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주전은 1438년에 만든 흠경각 옥루나 1536년 제작한 자격루의 부속품일 가능성이 있는데, 기록만 있던 자료의 실물이 처음 확인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세종 시대 과학유산이 이야기만 전할 뿐, 유물은 거의 없었다”며 “세종 시대 과학기술을 복원할 실마리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엄청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발굴조사를 맡은 수도문물연구원 오경택 원장은 “도기 항아리를 기와 조각과 작은 돌로 괸 것을 보면 인위적으로 묻은 정황을 알 수 있다”며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 중 화포인 소승자총통이 1588년에 만들어져 가장 늦은 편인데, 1588년 이후 어느 시점에 한꺼번에 묻었다가 잊혀서 다시 활용되지 못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그는 “구리는 조선시대에도 비싼 금속이었다. 유물을 재화, 즉 값나가는 물건으로 인식했을 수도 있다”며 “종로구 청진동·관철동 일대에서 조사를 하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발생한 16~17세기의 문화층에서 제사용 그릇이나 총통을 일부러 묻거나 도망치면서 버린 듯한 흔적이 나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누군가가 유물을 모아서 폐기했을 수도 있다”며 “금속 유물을 무더기로 묻은 이유는 추가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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